-
목차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은 재임 중, 그리고 2024년 대선 레이스에 다시 뛰어든 이후에도 지속적으로 빅테크 기업들을 강하게 비판해 왔다. 그는 페이스북, 트위터, 구글, 애플, 아마존 등 주요 플랫폼 기업들을 검열 기관이자 좌파 편향의 기지로 규정하며, 정치적 표현의 자유를 침해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빅테크에 칼을 겨눈 배경과 정치적 맥락
이런 입장은 단순한 레토릭을 넘어서 구체적인 정책으로 이어졌다. 트럼프는 2020년 행정명령을 통해 통신품위법 230조(Section 230)의 개정을 추진했다. 이 조항은 인터넷 플랫폼이 사용자의 게시물에 대한 법적 책임에서 벗어날 수 있도록 하는 핵심 조항인데, 트럼프는 이를 폐지 혹은 제한함으로써 소셜미디어 플랫폼들이 검열의 책임을 지도록 하겠다는 입장을 고수했다.
이런 정책 방향은 단순히 규제의 문제가 아니라, 미국 사회의 표현의 자유와 빅테크 기업의 자율성 간 충돌, 더 넓게는 플랫폼 경제 자체에 대한 불신이라는 정치적 감정이 반영된 것이었다. 특히 보수 진영에서는 디지털 공공광장 역할을 하는 플랫폼들이 특정 성향을 가진 콘텐츠에 불이익을 준다는 주장을 지속적으로 제기했다.
자율규제 체계와 플랫폼의 딜레마
소셜미디어 플랫폼은 지난 10여 년간 자율규제를 통해 커뮤니티를 관리해 왔다. 페이스북, 트위터, 유튜브 등은 자체적인 커뮤니티 가이드라인과 알고리즘을 기반으로 콘텐츠를 필터링하거나 제한해왔다. 이들은 표현의 자유와 책임 있는 콘텐츠 관리 사이의 균형을 고민해 왔지만, 정치적 사안이 얽히면서 그 딜레마는 더욱 심화되었다.
특히 트럼프 지지자들의 계정 정지, 1.6 의사당 폭동 이후의 콘텐츠 차단, 음모론과 백신 관련 허위정보 대응 등은 자율규제의 정치적 편향성 논란으로 확산되었다. 이에 따라 플랫폼들은 어느 방향으로도 자유롭지 못한 상황에 처했다. 자율규제를 강화하면 검열 논란에 휘말리고, 방임하면 허위정보·극단주의 확산의 책임을 져야 하는 구조다.
트럼프의 공세는 이러한 플랫폼의 모호한 중립성을 직접 겨냥했다. 그는 플랫폼은 편집 기능을 가진 미디어이므로 언론사처럼 법적 책임을 져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는 자율규제라는 틀을 흔들고, 플랫폼의 정체성을 기술기업에서 언론사 혹은 공공기관에 가깝게 전환시키려는 시도였다.
플랫폼 경제의 성장 둔화와 투자 위축
트럼프의 빅테크 규제 시도는 정치적 논란을 넘어 경제적 측면에서도 민감한 파장을 낳았다. 플랫폼 경제는 지난 20년간 미국 경제 성장의 핵심 축으로 자리잡아 왔으며, 고용 창출, 글로벌 시장 점유, 혁신의 중심에 있었다. 하지만 최근 몇 년 사이, 플랫폼 기업의 성장이 정체되고 있다는 신호가 나타나기 시작했다.
한편으로는 광고 수익 의존 구조의 한계, 다른 한편으로는 반독점 규제 강화, 콘텐츠 관리 압박, 법적 불확실성이 겹쳐지며, 투자자들의 불안감도 커지고 있다. 트럼프의 정책은 이 가운데서 정치적 규제 리스크라는 새로운 불확실성을 더했다. 빅테크 기업에 대한 반복적인 위협은 장기적 투자 전략에 악영향을 미치며, 기업들의 R&D 투자, M&A 활동에도 위축을 불러올 수 있다.
게다가, 통신품위법 230조가 축소된다면 플랫폼 기업은 더 많은 법적 책임을 질 가능성이 있고, 이는 운영비용과 리스크 증가로 직결된다. 실제로 일부 기업들은 콘텐츠 자동 필터링 시스템을 고도화하거나, 플랫폼 내 정치적 논쟁 콘텐츠를 줄이려는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이는 사용자 경험을 제약하고, 결국 이탈과 참여 저하로 이어질 수 있다.
트럼프의 빅테크 비판은 미국 정치의 핵심 쟁점인 표현의 자유와 플랫폼의 책임성이라는 문제를 다시 수면 위로 끌어올렸다. 그의 주장은 많은 보수 유권자들의 지지를 받지만, 동시에 기술 산업과 시민단체, 일부 진보 진영에서는 위험한 정치 개입으로 간주된다.
결국 이 문제는 단순히 트럼프 개인의 정치적 성향에 국한되지 않는다. 디지털 공론장이 사회의 핵심이 된 지금, 플랫폼은 사기업이면서 동시에 공공 인프라 역할도 수행하고 있다. 이중적 정체성 속에서 정부의 개입은 어느 수준까지 허용될 수 있는가, 혹은 자율규제는 얼마나 효과적이고 신뢰할 수 있는가라는 질문은 더욱 첨예해질 수밖에 없다.
해법은 명확하지 않다. 규제를 강화하면 플랫폼의 창의성과 경제성이 약화될 수 있고, 자율에만 맡기면 정보 혼탁과 신뢰 위기가 반복될 수 있다. 아마도 가장 현실적인 방향은 민간 자율과 공공 감독의 균형 모델, 즉 투명성 보고·외부 감시위원회·이용자 권한 강화 등을 병행한 책임 기반 자율규제 시스템일 것이다.
트럼프의 빅테크 공격은 단순한 정치 전술을 넘어, 미국 사회가 디지털 시대를 어떻게 살아갈 것인지에 대한 근본적 질문을 던진다. 소셜미디어의 자율성과 표현의 자유, 플랫폼 경제의 지속 가능성과 사회적 책임이라는 요소는 단순히 양립 불가능한 개념이 아니라, 미래의 민주주의와 시장의 핵심 인프라를 어떻게 설계할 것인가에 대한 고도의 균형 게임이다.